역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마틴 루터

역사와 건강 2021. 4. 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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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마틴 루터의 만남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정말 같은 시대 사람이었고, 또 만남이 있었나요?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천재적 예술가이자 시인, 엔지니어, 건축가, 물리학자, 생물학자, 지질학자, 해부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다빈치는 1452년 4월 15일, 법률 공증인이었던 아버지 Ser Piero와 농부의 딸이였던 빈치 출신 카타리나 Catarina 사이에서 태어났는데vlfpsc, 혼외자였던 그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지 못하고 그냥 ‘빈치 지역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라고 불렀습니다. 17살이 되었을 때 레오나르도는 피렌체로 이사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그는 예술에 대한 수업을 받으며 예술가로 성장하였습니다.

동성애 성향 때문에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 ‘동성애’를 했다는 죄명으로 재판에 회부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다빈치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았으며 원망과 적대심에 가득 찬 태도를 보이곤 했다고 합니다.

모나리자

초기에는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베로키오(Andreadel Verrocchio, 1435~1488)의 수하에서 그림을 배웠으며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바 병원’에서 해부학을 공부했습니다. 해부학은 다빈치의 손에서 새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페스트로 세상을 떠난 토레와 함께 해부학 백과전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해부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살리우스보다 40년이나 앞선 것이었습니다.

다빈치는 대뇌 해부를 처음 시도한 인물로, 해부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흐르는 물과 석회수로 장기를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리고 장기 안에 파라핀을 넣었는데, 그가 발명한 이 방법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504년 그는 피렌체에서 모나리자의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 시기는 바로 다빈치가 해부학에 열심히 몰두했던 때였습니다. 1510년 다빈치는 길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열심히 관찰하였고, 병원 지하에서 시신을 해부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품 남성두상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

마틴 루터

종교개혁으로 개신교의 첫발을 뗀 마틴 루터는 1483년 독일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 부모님의 뜻대로 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505년 7월 2일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벼락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며 두려움에 ‘수도사’가 되는 것을 서원하고 바로 에르푸르트에 있는 ‘어거스틴 수도회’ 소속 ‘검은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됩니다.

1510년, 당시 독일 어거스틴 수도회는 대표인 슈타우피쯔가 수도원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에 반대하며 어거스틴 수도원 대표로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직접 반대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로마로 출발하였습니다.

독일에서 로마까지는 대략 1800km정도 떨어져 있는데, 마틴 루터는 묵언수행을 하며 매일 30-40km를 걸어 대략 50-60일 정도의 시간이 걸려 로마 교황청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때 이태리 아페니노 산맥을 넘으면서 루터는 동상 등의 병을 얻게 되어 피렌체에서 잠시 치료를 받게 됩니다.

마틴 루터가 피렌체에 도착하여 머물렀던 시기가 바로 1510년이었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1493

1510년 피렌체: 마틴 루터,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리고 마키아벨리

1510년 피렌체

이 시기 피렌체는 르네상스와 인본주의가 최고로 발달했던 도시 중 하나로, 정치적으로는 메디치 가문을 중심으로 한 봉건제도가 몰락하고 공화정이 구성되었습니다. 이 공화국을 이끌고 있었던 인물은 바로 공화국 10인 위원회의 서기장으로 후일 1513년 최초의 근대 정치철학서 ‘군주론’을 저술한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 였습니다.

마키아벨리

즉, 마틴 루터가 피렌체를 방문했을 당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해부학에 심취해 비밀리에 지하에서 시체 해부를 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이끄는 공화정을 통해 근대 정치사상이 태동한 그 순간, 그 장소 피렌체에 그들이 함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서두에 제기했던 질문,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만남’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렇게 한 시대, 한 공간에서 천 년 동안 쌓여왔던 중세의 담을 허물기 위해 서로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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