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손가락이 잘리는 위증죄

역사와 건강 2021. 6. 7. 15:13
728x90

 

무한도전 선서하는 장면 캡쳐

법정에서 증인들은 재판장 앞에 서서 오른손을 들어 증인 선서문을 이렇게 낭독합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형사소송법 제157조에 보면 손을 들어야 한다는 문구는 없습니다. 형사소송법에 언급된 내용은 기립해서 엄숙히 하라는 규정만 있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증인이 손을 들고 선서를 하지만 판사가 이를 교정해 주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 영화나 드라마에서 손을 들고 선서하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손을 들고 선서를 하는 순간은 법정의 증인석 말고 또 있습니다.

바로 대통령 취임 선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선서 때 국민 앞에 오른손을 들고 선서를 하며 선서문을 읽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경우 대부분 집무실에서 선서를 하는데, 왼손은 성경책 위에 놓고 오른손은 손가락을 편 상태로 들어서 선서식을 거행합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서하는 장면

오른손을 들어 선서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렇게 손을 들어서 무엇인가를 맹세하는 전통은 기독교 문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핍박 때문에 공개적으로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기독교인으로 발각되면 바로 잡혀 가서 죽을 수도 있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 만의 신호로 서로를 알아보았고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의 물고기 표시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표식이었습니다. 물고기 표식처럼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신앙을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처음 시작은 은밀히 시작되었기 때문에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고, 어떤 모습과 의미가 정확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초대 교회 당시 그렇게 은밀하게 시작된 손가락의 표시가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도 계속해서 사용되었고 발전했습니다.

728x90

로마 카톨릭에서는 오른손의 세 손가락을 펴고 네 번째인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손바닥 안으로 접어서 신앙을 고백하는데,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접은 약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새끼손가락은 예수의 인성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손바닥은 하나님의 정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손가락 세개를 피고 나머지 손가락 두 개를 접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오른손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이 고백의 손가락으로 축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처음 문헌으로 확인된 것은 12세기, 176대 교황인 인노첸시오 3세(1198-1216) 의 예배의식 개혁서 입니다. 그리고 이후부터 천주교에서는 예배 마지막 순서로 축도를 할 때 먼저 손을 쫙 피고 올려서 축도를 시작한 후 오른손으로 십자가 성호를 만들어 축도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이때 주교들은 오른손 손가락을 모두 피는 것이 아니라 세 손가락 펴서 십자가 성호를 만듭니다.

로마카톨릭의 축도, 한스 멤링 1481

동방 정교회의 축도는 다른 손가락 표시로 진행합니다: 엄지와 약지를 서로 붙이고 검지는 쭉 펴며 중지와 새끼 손가락은 약간만 굽힙니다. 이 상태에서 축도를 진행합니다.

이렇게 손가락을 만들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 Ἰησοῦς Xριστός라는 그리스어의 약자를 손가락으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쭉 핀 중지는 그리스어 요타인 I를, 약간 구부린 중지는 예수의 마지막 글자 시그마 C, 엄지와 약지의 붙여서 그리스도의 첫 글자 X를, 그리고 다시 약간 구부린 마지막 새끼손가락 이 그리스도 마지막 철자인 시그마 C를 나타냅니다.

물론 이러한 초대교회 전통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로 넘어오면서 단순하게 바뀌었습니다. 손 바닥을 회중을 향해 한 손이나 두 손 모두를 쫙 펴거나 손을 회중의 머리나 어깨 위에 올려놓는 것처럼 바닥을 땅이나 회중을 향해 비스듬히 굽혀 축도를 하고 있습니다.

동방정교회의 축도, 세팔루 대성당 모자이크 벽화 12세기

이러한 기독교 전통이 유럽 사회에서 법이 발전함에 따라 증인을 부르는 경우들이 늘어나면서 증인 선서에 오른 손을 들어 선서하게 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이렇게 오른 손을 들어 선서함으로 첫 번째, 올려진 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복종함을 고백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증인으로 서 있는 순간 위증의 경우 증언자의  영혼에 어떠한 벌이 가해져도 괜찮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중세때에는 그렇기 때문에 위증한 사람들은 벌로써 증언 때 선서했던 손을 잘라버렸다고 합니다.

역사상 이 고백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어마어마한 사건이 897년 8월 로마에서 열렸던 종교재판에서 있었습니다. 그것도 죽은 후 8개월이 지난 시신의 몸에서 말입니다.

교황 포르모수스의 시체 재판, 장 폴 라우렌스 1870 

역사상 시체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111대 교황 포르모수스였습니다.

113대 교황 스테판 6세는 8개월 전에 죽은 그의 전임 교황 포르모수스 시신에 교황 예복을 입혀 종교재판에 앉힙니다. 교황 프로모 수스 죄명은 이렇습니다.

  • 교황의 승인없이 교구를 이탈.
  • 로마 수도원 약탈.
  • 성무 정지 기간 중 예배를 집례함.
  • 사악한 남녀들과 함께 음목 하여 로마를 파괴하려 함.

실제로 포르모수스 교황에게 유죄가 선고되어 교황의 직위를 박탈하고 고대 로마의 형별인 기록 말살형 – 포르모수스 교황의 모든 행적을 기록에서 지워버리는 기록 말살형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포르모수스 교황의 시신은 신앙 고백을 하고 축도를 하는 오른손의 세 손가락이 잘린 채 테베레 강에 던져졌습니다.

이 세 손가락을 자른 의미는 교황으로 내렸던 모든 축도를 무의미하게 하는 한 편 삼위일체 하나님께 고백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형벌의 의미로 시신을 훼손하여 강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이 포르모수스 교황의 시신을 가지고 종교재판에 앉히는 부관참시는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황 스테파노 6세가 선종한 후 어느 수사가 포르모소 시신을 수습하여 다시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에 안장하였는데,  904년 교황 세르지오 3세에 의해  두 번 째 포르모 소 시신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포르모소 시신은 교황 스테판 6세 때와 똑같은 죄목으로 기소가 되었고 이번에는 남아있었던 다른 손가락도 다 잘린 상태로 다시 한번 테베레 강에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다시 한 번 어부의 그물에 걸려 발견되었고 베드로 성당에 세 번째 장례 되어 안치되었습니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성 세르바스 대성당

 

감사합니다.

블로거 역사와 건강

 

· 내용상 오류나 저작권에 관련한 문의그리고 기타 문의사항은 댓글이나 h_h-2021@kakao.com  연락 주세요.

· 무단전재  재배포 금지합니다저작권에 충돌되는 이미지나 내용 등은  메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