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루터 보름스 제국의회 500 주년 – "여기 제가 섰습니다. 다르게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나님 도와 주소서"
상식으로 이해하는 마틴 루터 종교개혁
보름스 제국의회 500 주년
"여기 제가 섰습니다. 다르게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나님 도와 주소서“
1521년 4월 18일
마틴 루터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 칼5세 앞에서 최후의 변론을 합니다.
„저는 성경을 통한 증거나 명백한 이성적 논박이 없는 한 제가 인용한 모든 글들을 철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믿음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오류와 모순에 빠져 있는 교황이나 공의회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내 주장을 철회할 수도 없고, 철회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입니다. 아멘“
루터의 종교 개혁은 바로 유럽 전체를 지배하는 가톨릭에 대한 반대였고, 신성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신성로마제국은 ‚하나의 신앙과 하나의 제국‘이라는 모토로 전 유럽을 지배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로마 카톨릭과 신성로마제국을 거역한다는 것이 바로 ‚죽음‘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을 루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존 위클리프 John Wycliffe‘가 그랬고, 프라하의 ‚얀 후스 Jan Hus‘가 그렇게 죽어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보름스 행을 말렸습니다. 왜냐하면, 최후변론이 끝나면 제국 추방령이 내려질 것이고, 그 순간 루터는 ‚포겔프라이 Vogelfrei‘가 되어 더 이상 제국이 보호하는 시민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어느 누구도 루터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죽여도 죄가 아닌, 그런 신분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루터는 베텐베르그에서 약 600 Km 떨어진 보름스 국회에 참석하기 위한 여정을 떠났습니다. 친구들은 보름스로 가는 마지막 종착지인 오펜하임에서 루터를 설득해 도망할 것을 권유하기도 하였지만, 루터는 끝까지 보름스로 향했습니다.
당시 보름스는 신성로마제국의 제국의회가 여러 차례 열려 수도 역할을 하던 도시로 인구는 약 7천명이었는데, 마틴 루터의 종교재판을 보려고 7천여 명이 전 유럽에서 몰려들어 도시의 인구가 일시적으로 두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을 로마 교황청에 보고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때 약 20일 기간 동안 보름스는 밀려든 사람들 때문에 이곳은 머물 숙소도 없었고, 먹을 것도 없었던 전쟁을 방불케 하는 혼란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루터가 보름스에 도착한 이후부터 제국 의회가 열렸던 그 시간들을 날짜별로 정리하였습니다.
4월 16일: 루터가 동료들과 함께 보름스 도착. 당시 루터는 교황으로부터 출교를 당했기 때문에 교회에서 머물 수 없어서 교회 옆에 있는 요한니터호프에 숙박.
4월 17일: 재판정에서 황제는 루터에게 그의 주장 전체나 또는 일부에 대해서 철회할 의사가 있는지 질문.
4월 18일: 루터의 최후 변론.
4월 19일: 제국추방 - 효력 발효는 5월 8일부터.
4월 26일: 루터 일행은 보름스를 떠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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