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멸망은 각 시대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원인도 각 시대마다 약간 다르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물론 학자들 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전통적으로는 공화정의 붕괴와 사회적 불안, 그리고 외부 게르만족의 침입 등을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또 어떤 칼럼에서는 이런 전통적인 정치,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문화적인 차원에서 목욕탕으로 대표되는 로마의 퇴폐적인 문화와 도덕 파탄론 등을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로마에서 서로마로 이어진 천년 제국의 몰락은 그렇게 간단하게 한 두 가지 이유로 설명되어질 수 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국제적인 원인 뿐 아니라 자연적인 원인과 전염병까지 복합적인 결정체로, 여러가지 난제들을 로마 제국이 지탱할 수 없게 되어서 결국 무너지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여러가지 난제들에 대해서 한 번 구체적으로 살펴 봅니다.
정치적인 문제
옥타비아누스부터 시작된 제국은 약 2백여 년간 팍스 로마나 Pax Romana시대를 누렸습니다. 계속해서 제국은 팽창되었고, 제1 시민으로 황제는 원로원과 함께 강력한 중앙집권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2세기 말부터는 계속되는 반란과 군인 황제들의 난립 등으로 로마 제국은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286년, 강력한 1인 통치하에서 제국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제국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통치하는 사두 정치를 도입하였지만 이는 오히려 제국을 분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로마 제국을 다시 한번 강력히 일으켜 세우려 했던 황제가 392년 테오도시우스 1세였습니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황제권을 강화하려는 계획으로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겼지만 결국 제국은 동서 로마로 나뉘어서 서로마는 476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문제들
1. 농업의 쇠퇴
로마제국의 인구 비율을 살펴보면, 10%의 귀족과 90%의 농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즉, 90%의 농민이 로마에 사는 10%의 귀족들을 먹여 살렸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농민들이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고, 전쟁에서 사망하는 이유 때문에 농민이 점점 감소하고, 그 자리를 노예가 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로마는 브리타니아의 정복과 teutoburger 숲에서 대패한 이래 팽창은 정지하였고 노예 공급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농업이 점점 쇠퇴해져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2. 상업의 쇠퇴
로마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기 때문에 제국 내에서 적은 세금제도와 인프라를 이용하면 엄청난 상업적 부흥으로 국가 재정이 풍부해질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제국에서 상업은 부흥할 수 없었습니다. 현대의 학자들은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꼽고 있습니다.
1)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제국'하면 떠 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길을 통해 상업이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했지만 실재로는 이 길은 오직 군사용 길이었다고 합니다.
로마가 건설한 길은 로마의 전차 2대가 지나갈 수 있게끔 설계되었는데, 당시 사용했던 마차나 기타 다른 운송수단은 크기가 맞지 않아 이 길로 다닐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비탈길에서는 더더욱 우마차가 이 길을 이용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할 수 없었습니다.
2) 다양하지 않은 제국의 무역 제품들
로마제국은 북아프리카에서 서남아시아, 유럽 등 3개 대륙에 걸쳐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만약 이렇다면 다양한 문화들이 존재하고 아프리카의 다양한 문물과 물건들이 북쪽 유럽에 판매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문제는 로마 시민들은 어디를 가도 의식주가 비슷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다양성을 만들지 않고 항상 자신들이 즐겨먹던 것, 자신들이 즐겨 입었던 것, 자신들의 스타일대로 건설된 건물 등 어느 도시를 가나 종류가 비슷하였고 심지어 가격도 비슷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중계무역을 통한 이윤창출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일하게 중계무역으로 큰돈을 벌었던 것은 중국이나 인도와 실크로드나 배를 통해 무역을 했던 오스만튀르크족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물건을 유럽으로 판매했던 콘스탄티노플만 상업으로 발달하였습니다.
3) 귀족들의 행동
로마제국 초기 제국의 확장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부는 모든 로마 시민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귀족들이 차지하였습니다. 문제는 귀족들이 이 부를 생산을 위해 재 투자하거나 거대한 사회 간접 자본, 또는 기술 발달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지방 도시에 자신들의 사원을 짓고 도서관을 건설하는 데 사용하거나 유흥으로 탕진했다는 것입니다.
3. 세금 문제
모든 생산과 노동을 감당했던 노예가 새롭게 충당되지 않자 로마의 경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되었고 빈부격차는 더욱더 커져갔다. 전쟁 전리품으로 채웠던 국가 재정은 점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군대와 로마 제국의 유지를 위해서는 계속해서 돈이 필요한 제국은 세금을 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 재정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새로 발행되는 은화에 점점 은의 함량을 줄였는데, 이 모든 것이 더해져 로마제국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화폐제도의 붕괴를 경험해야만 했다.
전염병들
로마제국이 어떻게 알프스를 넘어 영국까지 점령할 수 있었을까? 물론 로마제국의 강력한 군대를 그 이유로 꼽을 수 있겠지만 기후학자들은 따뜻한 기온, 즉 ‚로마 온난기‘의 영향이라고 보았습니다. 지금은 영구 동토층이 되어버린 많은 알프스 산지에서 로마는 광산을 운용하였고, 로마 전역에 군대를 주둔하여 거대한 제국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원거리 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 따뜻한 기후는 전염병에게 번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원거리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배를 타고 전 유럽으로 전염병들은 계속해서 확산되었습니다.
1. 말라리아
로마 제국이 팽창되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경작할 농지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포도농사를 위해 산지를 개간하여 포도를 심거나 다른 농사를 지었는데, 이렇게 산에 있는 나무를 베고 개간을 하게 되면 비가 올 때 비가 땅 속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바로 저지대로 모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저지대에는 늪이 생기게 되는데, 기후까지 따뜻해서 모기들이 번식하는 데는 최상의 조건이 형성되었습니다.
현대에도 말라리아로 매년 전 세계에서 45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데, 최근 확인된 로마제국 시대의 아동 유골 DNA 분석이 말해주듯이 당시 로마제국에서도 말라리아로 상당히 많은 수의 인구가 죽어갔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2. 페스트
페스트는 역사상 인류를 괴롭혀 온 가장 오래된 질병 중에 하나로 지금도 아프리카나 등지에 페스트가 발병한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6세기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 때 처음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학자들은 이미 그 이전 제국이 형성되었을 때부터 페스트는 아프리카에서 그리스, 그리스에서 유럽으로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역사적으로도 기원 후 1-3세기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그리고 그리스 등지에 계속해서 페스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3. 천연두
지금은 공식적으로 종식된 전염병이지만 로마제국 당시에는 가장 무서운 병 중에 하나로 로마제국에서는 79년 티투스 황제, 161년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황제, 249년 데시우스 황제, 312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등 계속해서 천연두가 돌아서 수백에서 수천만 명이 계속해서 천연두로 사망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민족 대이동
가장 큰 외적인 문제는 바로 민족 이동이었다. 유라시아 지방에서 훈족이 계속해서 서쪽으로 밀고 들어왔고, 이 영향으로 게르만족은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로마 제국과 계속해서 국경을 두고 대치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민족에 대한 로마제국의 정책은 최초 정복이었지만 점차로 로마 제국의 힘이 약화되면서 유화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서고트족은 도나우 강 남쪽 지역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관리들은 이 헐벗고 굶주린 고트족 사람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을 노예처럼 개고기와 바꿀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로마제국은 자국의 영토 안에서 적을 키우고 있는 셈이 되었다. 결국 서로마 제국의 힘이 약해지자 서고트족 알라리크 1세는 410년 로마로 진격하여 로마를 약탈한다. 이후 반달족이나 프랑크족, 또는 색슨족 등과 같은 게르만족에게 의해 영국, 스페인, 북아프리카, 독일, 이탈리아 등 많은 로마제국의 지역들이 점령당하게 된다.
천년을 이어온 로마제국은 단순히 정치적인, 또는 게르만족의 민족 대이동을 통해서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수백 년 동안 로마제국은 제국을 지탱학 유지할 여력이 없었고,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그리고 환경적인 면 등 모든 분야에서 여러 가지의 위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로마 제국을 몰락으로 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 게르만족의 민족 대이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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