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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 건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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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16

신성한 국가? 신성로마제국의 이름의 역사 유럽을 지배했던 거대한 제국들은 모두 국호를 통해 고대 로마제국의 후예라고 지칭하며 전 유럽 대륙의 지배권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성하다"라는 말을 국호에 넣게 된 이유는 바로 성경 다니엘서에 나오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거 고대의 로마제국이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네 번째 적그리스도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세워진 유럽 제국은 "신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로마 제국의 전통을 따르지만 적그리스도가 아닌 기독교 하나님의 신앙과 하나님의 법 위에 세워진 합법적인 제국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로마제국 이후 최초의 제국 - 프랑크 왕국 로마제국 이후 서유럽에 최초로 황제가 된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는 프랑크 왕국이 서로마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하였고 교황 레오 3세도 프랑.. 2021. 6. 15.
제국의 완성 - 카를 대제(샤를마뉴) 카롤루스 마그누스 Carolus Magnus (740 – 814년)는 라틴어식 발음입니다. 프랑스어로 읽으면 Charlemagne 샤를마뉴, 영어는 Charlemagne 샬러메인, 그리고 독일어는 Karl der Große 카를 데어 그로세 또는 카를 대제라고 합니다. 원래 이름인 Carolus에 "위대하다"는 뜻인 Magnus가 애칭으로 붙은 것입니다. 학계에서 주로 불리는 이름은 카를 대제나 샤를마뉴로 샤를 1세, 또는 카를 1세로 표기됩니다. 여기에서는 샤를마뉴로 지칭합니다. 샤를마뉴는 교황 레오 3세에게 로마 제국의 황제 이후 최초로 서로마 제국 황제직을 수여 받음으로 중세 유럽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었으며, 이후 신성 로마제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근대 국가 발전으로의 토대를 마련하였.. 2021. 6. 14.
아버지 마르텔보다 더 강력한 단신왕 피핀 3세. 피피누스 3세 브레비스, 단신 왕 피피누스, Pippinus III Brevis 714-768년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를 열었던, 교황의 승인을 얻어 공식적인 국왕으로 즉위한 단신 왕 피핀 3세는 어릴 때부터 왕으로 길러졌습니다. 피핀 3세는 714년 마르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형 카를로만 Carloman과 함께 영국의 선교사 윌리브로드 Willibrord에게 세례를 받고 파리의 생드니 수도원 Basilique de Saint-Denis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이러한 배경은 피핀 3세가 로마 교황청의 수호자가 됨으로 아들 카를 대제가 황제에 오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습니다. 1. 권력에 대한 광적인 집착 이복형제 그리폰을 제거합니다. 말년이 되어 병약하게 된 마르텔은 큰아들인 카.. 2021. 6. 12.
서자의 억울함에서 권력의 정점으로 -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마르텔루스 카롤루스 마르텔루스 Carolus Martellus, Karl Martell 680-741년 인류 역사상 3대를 거처 계속해서 권력을 키웠던 가문. 강력한 왕권으로 프랑크 서로마 제국을 건설하여 로마 제국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운 시초 카롤루스 마르텔루스. 그 역사의 시작은 서자의 억울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 죽음의 고비를 넘어 권력의 중심으로 프랑크 왕국 클로타르 1세 Chlotar I (558-561년)는 모든 재산을 자녀들에게 균등하게 분할하는 전통에 따라 4개 지역 – 파리 Paris + 오를레앙 Orleans, 부르고뉴 Bourgogne, 아우스트라시아 Austrasia, 네우스트리아 Neustria을 4 자녀에게 상속합니다. 그렇지만 각 지역을 상속받은 왕자들이 후일 왕위에 오른다고 해도.. 2021. 6. 11.
민족 대이동 (게르만족 이동) 지금까지는 고트족, 반달족, 앵글로색슨족, 랑고바르드족, 수에비족, 프랑크족 등 여러 부족들을 묶어서 게르만족이라고 부르고, 4-6세기까지 계속되었던 대 이동을 게르만족 대이동이라고 설명하였지만, 현재는 여러 민족이 이동 한 민족 대이동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훈족의 이동 Hun 서양의 역사에 처음 훈족은 서기 290년 전후 터키 동부, 볼가강 동쪽 아르메니아 군대에 등장합니다. 이때부터 서서히 훈족의 이름은 서쪽 로마 제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점점 서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이 훈족과 로마제국 사이에 살고 있었던 여러 민족들(고트족과 게르만족들)과 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고트족은 훈족에 밀려 더욱 서쪽(서고트)이나 남쪽(동고트)으로 밀려나게 되.. 2021. 6. 10.
손가락이 잘리는 위증죄 법정에서 증인들은 재판장 앞에 서서 오른손을 들어 증인 선서문을 이렇게 낭독합니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형사소송법 제157조에 보면 손을 들어야 한다는 문구는 없습니다. 형사소송법에 언급된 내용은 기립해서 엄숙히 하라는 규정만 있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증인이 손을 들고 선서를 하지만 판사가 이를 교정해 주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 영화나 드라마에서 손을 들고 선서하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손을 들고 선서를 하는 순간은 법정의 증인석 말고 또 있습니다. 바로 대통령 취임 선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선서 때 국민 앞에 오른손을 들고 선서를 하며 선서문을 읽었습니다.. 2021. 6. 7.
유럽 수도원과 수도회의 역사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많은 수도원 abbey, monastery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말인 수도회 Order, congregation라는 단어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그래서 수도원과 수도회의 발전 단계를 한 번 알아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먼저 수도원이 시작되었는데, 이 수도원의 모태는 세상을 등지고 평생 수만을 했던 사막교부들 이었습니다. 1. 사막 교부 예수가 하늘로 승천한 후 초대 기독교인들은 아무리 박해를 받아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다시 이 땅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세상적인 모든 일들 – 결혼, 재산, 음식 등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힘이 되었던 예수의 말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태로부.. 2021. 5. 28.
로마제국의 멸망 로마 제국의 멸망은 각 시대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원인도 각 시대마다 약간 다르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물론 학자들 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전통적으로는 공화정의 붕괴와 사회적 불안, 그리고 외부 게르만족의 침입 등을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또 어떤 칼럼에서는 이런 전통적인 정치,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문화적인 차원에서 목욕탕으로 대표되는 로마의 퇴폐적인 문화와 도덕 파탄론 등을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로마에서 서로마로 이어진 천년 제국의 몰락은 그렇게 간단하게 한 두 가지 이유로 설명되어질 수 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국제적인 원인 뿐 아니라 자연적인 원인과 전염병까지 복합적인 결정체로, 여러가지 난제들을 로마 제국이 지탱할 수 없게 되어서 결국 무너지게 된 것이라고 할 수.. 2021. 5. 10.
고대 로마의 역사 총정리 BC 10세기경부터 이탈리아 반도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습니다: 북쪽 토스카나 지방과 그리스 식민지였던 남부 시칠리아 섬, 그리고 중부 테베레 강 하구 중심의 로마입니다. 이러한 반도를 통일한 나라가 로마인데, 이 천년이 넘는 로마 제국의 역사는 국가 통치 형태를 따라서 왕정시대, 공화정, 그리고 제국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왕정시대 (BC 753 – BC 509) 로마의 시작은 암늑대 젖을 먹고 자란 왕, ‚로물루스의 전설‘로 시작됩니다. 로물루스와 그의 동생 레무스는 전쟁의 신인 마르스와 사람의 딸 실비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출생 후 테베레에 버려졌지만 늑대의 젖을 먹으며 살아나 후일 도시국가 로마를 건설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로마 왕국은 약 244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마지막 왕인.. 2021. 4. 21.
마틴루터 보름스 제국의회 500 주년 – "여기 제가 섰습니다. 다르게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나님 도와 주소서" 상식으로 이해하는 마틴 루터 종교개혁 보름스 제국의회 500 주년 "여기 제가 섰습니다. 다르게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나님 도와 주소서“ 1521년 4월 18일 마틴 루터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 칼5세 앞에서 최후의 변론을 합니다. „저는 성경을 통한 증거나 명백한 이성적 논박이 없는 한 제가 인용한 모든 글들을 철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믿음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오류와 모순에 빠져 있는 교황이나 공의회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내 주장을 철회할 수도 없고, 철회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입니다. 아멘“ 루터의 종교 개혁은 바로 유럽 전체를 지배하는 가톨릭에 대한 반대였고, 신성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신성로마제국은 ‚하나의 .. 2021.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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