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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역사 총정리

by 역사와 건강 2021.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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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원로원과 대중, senatus populusque romanus

BC 10세기경부터 이탈리아 반도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습니다: 북쪽 토스카나 지방과 그리스 식민지였던 남부 시칠리아 섬, 그리고 중부 테베레 강 하구 중심의 로마입니다. 이러한 반도를 통일한 나라가 로마인데, 이 천년이 넘는 로마 제국의 역사는 국가 통치 형태를 따라서 왕정시대, 공화정, 그리고 제국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왕정시대 (BC 753 – BC 509)

로물루스의 전설

로마의 시작은 암늑대 젖을 먹고 자란 왕, ‚로물루스의 전설‘로 시작됩니다.

로물루스와 그의 동생 레무스는 전쟁의 신인 마르스와 사람의 딸 실비아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출생 후 테베레에 버려졌지만 늑대의 젖을 먹으며 살아나 후일 도시국가 로마를 건설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로마 왕국은 약 244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마지막 왕인 타르퀴니우스 왕은 원로원과 민회를 무시한 정치를 펴서 귀족들의 반감을 샀는데, 결정적으로 전쟁 중 저지른 그의 아들 섹스투스의 유부녀 강간사건으로 시민들의 분노를 사서 기원전 509년 종말을 맞이합니다.

2. 공화정 시대 (기원전 509 ~ 기원전 27)

공화정의 원로원

왕정에 등을 돌린 로마 국민들은 대물림이 되지 않고 1인 독단이 아닌 집단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 제도‚공화정‘ (Res public, 후일 Republic)을 도입하였습니다. 공화정의 가장 큰 특징은 다수 국민이 원로원과 민회를 통한 민의의 반영이었습니다. 왕을 대신하여 국가 대소사를 결정할 수 있는 장관 격인 정무관, 대통령 격인 집정관, 그리고 국가 비상시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비상계엄 사령관 격인 독재관을 임기직으로 선출하였습니다. 

이렇게 로마는 안정된 정치를 바탕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탈리아 반도 통일과 지중해 패권 장악

BC 270년, 로마는 주변 도시국가들과 전쟁 또는 동맹을 통해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통일합니다. 그리고 지중해의 패권국, 최초로 알파벳을 사용한 성경 속 가나안 민족 페니키아를 120년간 지속된 포에니 전쟁에서 무찌르고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합니다.

자신감을 얻은 로마는 남으로는 북아프리카, 북으로는 스위스, 서쪽으로는 스페인, 그리고 동쪽으로는 그리스까지 이어지는 과거 알렉산더 대왕이 이룩한 모든 제국을 차지하며 세계의 패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세계를 제패한 로마는 엄청난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경제적으로 전리품들의 유입과 전쟁 노예들 덕에 귀족들은 모든 가사와 노동에서 해방되었고 식민지와의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었지만 사회적으로는 빈부격차가 심해져 귀족들과 시민들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식민지로부터의 혜택은 귀족들에게만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집권 세력이 바뀌면 항상 피의 숙청이 일어났고 살생부가 등장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루비콘 강‘을 건넌 후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과 함께 로마로 입성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입니다. 그는 새로운 국가 통치체제인 ‚황제‘ 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BC 44 황제가 되지 못하고 암살당합니다. 그리고 그의 꿈은 양아들 옥타비아누스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카이사르의 죽음, 필로티의 칼 테오도르, 1865

3. 제국시대 – 원수정과 전제정(기원전 27 ~ 기원후 395년)

아우구스투스

제국 시대 통치 권력은 항상 황제가 가지고 있었지만 헌법상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따라 원수정 (기원전 27 - 기원후 283)과 전제정(284-395)으로 구분합니다.

원수정 (기원전 27 - 기원후 283)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는 ‚존엄한 자‘라는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받고 공식적으로 제1시민 Princeps라는 칭호를 얻게 되는데,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국가의 모든 주권은 원로원과 시민에게 있고, 그 시민을 대표하는 제1시민으로서 황제를 ‚원수 Princeps‘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즉, 주권은 여전히 시민과 원로원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원수정은 약 200여 년간 지속되었는데, 점점 황제의 권력이 약화되고 정치가 쇠퇴하자 235년부터 약 50년 동안에는 26명의 황제가 난립하게 되는 군인 황제 시절을 겪게 됩니다. 심지어 193년 4월에는 율리아누스 세베루스가 경매로 황제에 오르는 경우까지 발생하였습니다

기원 후 117년 로마제국 영토

전제정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 (284-395)

 

이 혼란을 정리하고 개혁을 실시한 황제는 284년 디오클레티아누스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동방의 군주제를 기본 모델로 삼아 제국의 시민과 황제의 관계를 주종의 관계로 바꾸고, 황제를 제1시민이 아닌,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주 하나님 dominus et deus‘의 의미로 발전시킵니다. 이제 주권은 시민이 아닌 군주인 황제만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1세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예수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 주장하는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선고하고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함으로 소모적인 교리 논쟁을 종식시켰던 것입니다.  

정권 강화의 연장선상으로 콘스탄티누스 1세는 330년 수도를 로마에서 그동안 어느 제국에서도 수로로 사용되지 않았던 비잔티움으로 옮겼습니다. 또한 392년, 테오도시우스 1세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며 이교도를 압박하고 황제권을 강화하려고 하였지만 제국을 그의 두 아들에게 양분하여 물려주면서 제국은 점점 힘을 잃어가게 됩니다. 

 

암브로시우스 주교와 테오도시우스 황제, 17세기

4. 서로마 제국의 쇠퇴 (395년–476)

동서로마의 분리, AD 395

서로마 제국은 정치, 군대, 그리고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정치는 부패와 암살, 민중봉기와 내전 등으로 인해 약화되었고, 용병들로 구성되었던 군대는 국가 재정의 고갈로 흔들렸으며, 더 이상의 영토확장 전쟁이 없는 현실에서 군인들의 내정간섭이 더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로마 경제도 벼랑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예와 전쟁 전리품 공급이 끊어지자 국가 재정은 바닥이 났고, 군대 유지를 위해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국가 재정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새로 발행되는 은화에 점점 은의 함량을 줄였는데, 그 결과 로마제국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화폐제도의 붕괴를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대외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민족 이동이었습니다.

훈족의 이동

유라시아 지방에서 훈족이 계속해서 서쪽으로 밀고 들어왔고, 이 영향으로 게르만족은 계속해서 로마 제국과 국경을 두고 대치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이민족에 대한 로마제국의 정책은 처음에는 정복이었지만 점차로 힘이 약화되면서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국경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관리들은 이 헐벗고 굶주린 고트족 사람들의 자녀들을 노예처럼 취급해서 개고기와 바꿀 것을 강요하며 조롱하였습니다.

이들의 분노는 계속해서 쌓여갔고, 결국 410년 서고트족  알라리크 1세는 로마로 진격하여 로마를 약탈하였습니다.

이후 반달족이나 프랑크족, 또는 색슨족 등이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분할하여 각각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며 서로마 제국은 476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5. 동로마제국 (395-1453)

콘스탄티노폴리스 조감 복원 상상도

동로마는 정치와 경제, 모든 분야가 불안정하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고  6세기 유스티아누스 대제 시절 새로운 로마 법전을 통해 제국의 기강을 다지면서 기틀을 세워갔습니다. 과거 로마의 영광을 꿈꾸며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건축하였지만 전염병으로 인해 인구가 감소하면서 경제가 쇠퇴해졌고, 주변 이민족의 침공으로 혼란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때부터 동로마 제국은 이제 더 이상 라틴어를 사용하는 로마 제국의 후손이 아닌 비잔틴 제국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는데, 제국 내에서 라틴어는 공문서에서만 사용되었고 일상적인 언어는 그리스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추종자들, 모자이크, AD 545

 

1099년 십자군의 예루살렘 함락

동로마 제국을 혼란으로 밀어 넣은 십자군 원정

동로마 제국을 더욱 혼란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11세기부터 시작된 십자군 원정입니다.

명목상으로는 예루살렘과 동방을 무슬림으로부터 탈환하고 무장 순례 원정을 개시한다는 종교적인 목적이었지만 약육강식의 시대였던 당시, 동로마 제국은 수십만 명의 군대가 제국을 지나가는 것이 위협적으로만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역이용했던 인물이 바로 당시 지중해의 무역 독점을 노리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 ‚엔리크 단돌로‘였습니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기 위해 제4차 십자군에 참가하였고, 1204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십자군에게 함락되어 라틴제국이 설립됩니다.

이후 1261년 미카일 8세에 의해 다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하여 비잔티움 제국이 부활하였지만 이후로 계속해서 내적으로는 반 비잔티움 세력과 그리고 외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서 계속 공격을 받게 되었고, 끝내 콘스탄티누스 11세 때인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메호메드 2세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입성하는 메흐메트 2세

 

감사합니다. 

 

역사와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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