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지배했던 거대한 제국들은 모두 국호를 통해 고대 로마제국의 후예라고 지칭하며 전 유럽 대륙의 지배권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성하다"라는 말을 국호에 넣게 된 이유는 바로 성경 다니엘서에 나오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거 고대의 로마제국이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네 번째 적그리스도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세워진 유럽 제국은 "신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로마 제국의 전통을 따르지만 적그리스도가 아닌 기독교 하나님의 신앙과 하나님의 법 위에 세워진 합법적인 제국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로마제국 이후 최초의 제국 - 프랑크 왕국
로마제국 이후 서유럽에 최초로 황제가 된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는 프랑크 왕국이 서로마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하였고 교황 레오 3세도 프랑크 왕국을 "서로마 제국"이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그때 당시에도 고대 로마제국이 계속해서 비잔티움 제국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교황과 카롤루스 대제에게는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받은 적장자라는 선포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제국의 이름에 "신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토 1세 황제 - 교황의 수호자
오토 1세 황제나 그 후계자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신성한 교회를 보호하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국의 이름에 "신성"이라는 단어를 붙일 생각을 못했던 것이지요. 오토 1세가 황제가 되었을 당시 제국의 이름은 "동프랑크 왕국 Regnum Francorum orientalium ", 줄여서 "프랑크 왕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오토 1세의 후예인 오토 2세때 와서는 황제가 단순히 교회의 수호자가 아니라 로마의 황제가 되었는데, 이는 고대 로마제국 당시 세속적인 권력뿐 아니라 영적인 권력까지 장악했던 황제의 권위를 연상하게 하는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오토 3세 때에 와서는 황제를 교황과 동일시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servus Jesu Christi, 사도들의 종 servus apostolorum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도를 교황은 달갑게 여기지 않았지요. 결국 1075-1122년까지 지속된 서임권 투쟁Investiture Controversy으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수호자에서 지배자로 - 신성한 제국
처음으로 국호에 "신성"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신성한 제국sacrum imperium"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1157년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Barbarossa 황제 시절부터였습니다. "신성한 제국"이라는 국호의 정확히 "교회와 별개이지만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독자적인 신성을 가진 제국"이라는 뜻입니다. 이탈리아와 교황령 일대를 지배하고자 한 프리드리히 1세의 야심을 반영했지만 당시 이 국호가 공식적으로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진화하다 보니 교황의 입장에서 보면 교황의 권위로 세속 왕에게 황제관을 씌웠는데 이제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꼴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동프랑크 왕국을 지칭할 때 로마 제국이라는 말 대신 ‚독일 왕국, 로마인의 왕 또는 독일과 로마인의 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고대 로마제국과의 단절을 꾀하며 공격하였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선출을 못했던 1250-1273년 대공위 시대에서 최초로 "신성 로마 제국 Sacrum Romanum Imperium"이라는 국호가 사용되었는데, 전 유럽에서 사용되지는 못하다가 100여 년이 지난 후 공식적인 문서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국호에 "신성"이라는 단어 하나를 넣는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항상 교황과 황제와의 대립은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신성"이라는 수식어가 국호에 공식적으로 들어간 것은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던 1512년 쾰른에서 열린 제국의회에서 반포된 칙령부터 였습니다. 당시 사용된 정확한 국호는 "독일 국민의 신성로마제국 Imperium Romanum Sacrum Nationis Germanicæ"이었습니다. 여기에 "독일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게 된 이유는, 당시 이탈리아가 제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났고, 부르고뉴 지방도 프랑스 수중에 들어갔기 때문으로 설명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의 칭호에 정확히 독일이라는 단어를 넣음으로 독일 귀족들이 지배하는 제국을 명시함으로 제국의 통체 이념 속에 독일 귀족들의 의지를 강조하는 의미를 나타냈습니다.
물론 이 국호는 이 후 불규칙적으로 사용되었고 시간이 흐르며 더욱더 잊히는 이름이 되었고 유일하게 문학작품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가 볼테르 Voltaire는 이러한 현실을 빗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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