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는 중세 시대 비트코인으로, 황금과 같이 취급되었던 가장 비싼 향신료 중 하나였습니다.
후추는 최고의 선물 중에 하나였고, 세금이나 관세, 인질의 몸값 등 어디에서나 돈을 지불해야 하는 곳에 돈 대신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게다가 페스트가 전 유럽에 퍼지면서 후추로 페스트를 예방할 수 있다는 소문 덕에 더더욱 후추 값이 천장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결국 후추 무역은 정말 황금알을 낳는 블루오션 그 자체였습니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후추의 가격을 결정하는 도시, 바로 그곳이 유럽 무역의 중심이며 패권국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 어느 도시가 후추의 가격을 결정했는지 알아볼까요?
후추의 역사는 그리스/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프리카, 유럽, 인도-아시아까지의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 대왕 시절 귀족들이 가장 좋아했던 향신료 중 하나가 바로 ‘후추’였습니다. 이때는 비단길을 통해 인도에서 수입되었습니다. 이때 동방과 서방 무역의 메카가 바로 콘스탄티노플, 오늘의 이스탄불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10세기경 동서무역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국가가 있었는데, 바로 베니스 공화국이었습니다. 훈족과 수많은 이민족의 침입 때문에 생존을 위해 섬으로 몰려들었던 베네치아 인들은 유일한 활로인 해상교역을 개척하고 동서양 무역의 메카로 발전하였습니다. 13세기 후반 베니스는 비잔틴, 이슬람, 그리고 동양과 교차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고,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33,000척에 달하는 배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후추의 역사에서 큰 역할을 했던 사건은 바로 1069년-1291년까지 약 33백 년간 지속된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 때 유럽 본토에서는 면이나 무기 등의 전쟁물자들을 전쟁터인 동방으로 보냈다. 이때 본국으로 돌아오는 배에는 열대 과일이나 귀금속, 그리고 여러 가지의 향신료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으뜸이 바로 후추였습니다. 이렇게 공수된 향신료를 왕들과 귀족들은 서로서로 보석처럼 선물하곤 하였습니다.
이 과도한 사치에 불을 붙인 이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동방견문록’Buch der Wunder으로 유명한 마르코 폴로입니다. 이 책에서 동양의 문명과 향신료 등을 소개하였는데, 이를 접한 귀족들이 당시 동서양 무역의 메카였던 베니스로 몰려들었고, 덕분에 후추의 가격은 30배 이상 상승하였습니다.
이렇게 베니스는 약 15세기까지 55백 년간 동서 무역의 중심지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바로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만요.
대항해시대 신대륙 발견의 가장 큰 목적이 바로 ‘후추’와 같은 향신료였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는 스페인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지원을 받아 후추의 산지 인도를 찾으러 떠났지만 아메리카 산 살바도르 (San Salvador)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고춧가루와 금, 은 등의 귀금속을 가져왔습니다. 물론 후추는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베니스의 아성을 무너트린 도시는 바로 포르투갈 리사본이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후 6년 후에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 Vasco da Gama는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먼저 동방무역의 전초기지로 아프리카 항로를 개척하였습니다. 이렇게 개척된 동방무역 항로를 통해 유럽에서 전혀 영향력이 없었던 포르투갈이 단번에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당시 가마는 22년 동안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여 인도로부터 후추를 수입하였는데, 수입한 후추의 값은 가마가 22년 동안 투자한 투자비 대비 60배의 수익을 얻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럽 전체의 후추 가격을 베니스에서 결정했는데, 가마의 직수입으로 리사본 가격보다 베니스 가격이 5배는 비쌌습니다. 베니스의 아성이 이렇게 무너지면서 이후 100100여 년 동안 유럽 후추 무역 패권은 포르투갈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이때 가마는 역사상 최초의 컨테이너선을 착안하여 1505년 인도에서 향신료들을 수입하였습니다.
그 후로 후추의 패권은 스페인으로, 그리고 그 후에는 네덜란드와 영국이 패권에 도전하여 부를 축적하였는데, 특히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은 인도 및 동남아시아 식민지를 통해 1,000%나 되는 이윤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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